구원파 박옥수의 기쁜소식선교회
I. 서론

한국교회는 지금 이단과의 전쟁이다. 특히 이만희의 신천지운동은 이전의 이단과는 전혀 다른 전략으로 기존 교회를 공격하고 있다. 이들은 교회뿐만 아니고 대학의 기독교 동아리에도 위협적이다. 최근에 전남지역의 모 대학 동아리가 해체되는 사태까지 발생하였다. 이단들의 형태가 여러 가지지만 가장 분별하기 힘든 이단이 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이단이 “구원파”일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경전을 갖고 있지 않다. 그리고 일반 이단들의 특징인 교주 사상도 희박하다. 그들은 성경 해석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주장하기 때문에 평신도들이 이들의 주장의 오류를 간파하기는 쉽지 않다. 이들은 기존 교인들의 취약점인 구원의 확신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 때문에 평신도들은 쉽게 이들의 주장에 동화되어 빠져들고 만다. 박옥수는 구원파의 부류에 속해 있으며 최근에 그 교세를 빠르게 확장시키고 있다. 그의 주장이 무엇인지 본고를 통해 약술하려 한다.

Ⅱ. 본론

1. 발생의 과정

박옥수 구원파의 원조인 권신찬 구원파는 네델란드인 선교사 길기수(Gase Glass)에 의해 “죄 사함을 깨달았다.”는 권신찬과 미국 선교사 딕욕(Dick York)의 영향으로 “복음을 깨달았다.”는 권의 사위 유병언과 함께 1961년 대구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1963년부터 선교사들과 관계를 단절하고 독자노선을 걷게 된다. 현재 구원파의 계열은 유병언(권신찬)의 기독교복음침례회, 이요한의 대한예수교침례회와 박옥수의 대한예수교복음침례회 등 3계파를 형성하고 있다. 기쁜소식선교회는 박옥수에 의해 1960년대 후반부터 종파운동으로 시작되었다. 박옥수는 1944년 경북 선산에서 출생하였고, 그는 네델란드인 길기수(Gase Glass)에 의해 큰 감명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박옥수는 구원파의 경우처럼 자신이 거듭난 날짜를 중생의 증거로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1968년 그는 김천에서 전도사역을 하던 중 ‘믿음의 방패선교회’인 딕욕(Dick York) 선교사에 의해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 후 그는 대구중앙교회와 대전 한밭중앙교회에서 사역을 하였다. 1976년에는 신학교를 설립하여 선교사들을 배출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한 때 구원파에 소속되기도 하였으나 1983년 예수교복음침례회를 창설하여 독립하였다. 그는 2004년부터 기쁜소식강남교회에서 사역하고 있다. 현재 기쁜소식선교회에 속한 131개의 지교회와 세계선교회는 91지부를 두고 있다. 1993년 예장통합에서는 이단으로 정죄하였으나, 2004년 ‘예장연’에서는 이단의 혐의를 부정하여 기쁜소식선교회의 이단성 여부가 혼란한 상태이다.

2. 박옥수의 구원파 교리

“죄사함 거듭남의 비밀”은 박옥수의 사역의 중심된 슬로건이다. 그는 철저하게 신도들에게 중생의 경험을 요청하고 있다. 그는 신도들이 죄의 속박에서 해방되어 구원의 확신을 얻고 “기쁜 날 기쁜 날 주 나의 죄 다 씻은 날”의 찬송을 참 마음으로 감동 깊게 부르기를 소원하고 있다. 이것은 박옥수의 일관된 지론이다. 그는 구원의 확신에 대한 열정과 감동으로 일관된 설교나 세미나를 진행하여 많은 신자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실제로 그의 저서나 세미나의 내용을 보면 그의 이단성을 단번에 파악하고 진단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왜 한기총 이단사이비문제연구소에서는 2004년 그를 이단사이비의 계파로 분류하였는가?

논자는 박옥수의 구원의 확신에 대한 대표적인 저서인『죄사함 거듭남의 비밀』을 연구하여 그의 이단성 여부를 살펴보려 한다.

이 책의 처음에 소개되는 ‘네 사람의 문둥이’(왕하 7:1-9)는 부산집회 때 설교한 내용이다. 그는 서두에 자신의 바람을 다음과 같이 호소한다.

“여러분이 말로만 들어오던 ‘기쁜 날 기쁜 날 주 나의 죄 다 씻은 날’ ‘너희 죄 흉악하나 눈과 같이 희겠네’ 라는 사실이 어떻게 여러분 속에 이루어질 수 있는지, 이 중대한 문제에 대해서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전의 기존교회의 신앙생활에서 자신이 거듭나지 못했던 경험을 말한다.

“저도 오랫동안 교회에 다녔지만 어떻게 해야 죄를 씻음 받는지를 몰랐습니다. 무조건 회개하고 고백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씻어질 듯 씻어질 듯 하면서도 마음은 여전히 무거운 죄에 사로잡혀 있는 것을 볼 때 난감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신에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모든 신자들의 문제이므로 이 문제를 끄집어 내놓고 마음을 열고 토론하자고 제시합니다.

“오늘 저녁에 우리가 하나님과 마음의 대화를 나누는 것이 좀 어렵겠지요?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까? 오늘 저녁 마음의 문을 열고 저와 우선 대화를 시작해 봅시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있는 의문을 전부 다 가지고 나오십시오. 신앙생활을 하면서 마음에 답답한 일들, 잘 모르는 일들, 어떻게 하면 죄를 씻음 받는지, 거듭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내 마음의 문제가 해결되는지 등등, 기도하면 좋은 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고, 성경 읽으면 좋은 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죄 짓는 것이 나쁜 줄 몰라서 죄를 짓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우리를 다스리지 못합니다.”

이렇게 신자들의 죄성에 대해 강조하면서 신자들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죄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론을 이야기 한다. 죄를 이기는 방법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 가능함을 역설한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저녁 저는 여러분의 어떤 의지를 요구하지 않습니다…예수 그리스도가 여러분의 마음을 지배하시면 더 이상 여러분 자신이 죄와 싸울 필요가 없는 줄 압니다. 여러분이 더 이상 술을 끊으시려고, 담배를 끊으려고, 도둑질을 하지 않으려고, 방탕한 생활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필요가 전혀 없게 됩니다. 여러분 안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여러분 마음속에서 그 모든 죄악을 이기게 해 주실 것입니다.”

박옥수는 그 다음 단계로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이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 드릴 수 있는가를 논하고 있다. 자신이 깨져야 함을 강조한다. 네 명의 문둥병자의 실상을 비유하면서 이점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박옥수는 교인들은 자신이 철저하게 죄의 노예상태에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죄로 인해 무능하기 때문에 그리스도 앞에 자신을 무너뜨리고 고백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문둥이 네 명이 아람 진을 향하여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다리가 끊어지고 손가락이 빠진 몸으로, 허기에 지쳐 넘어지고 쓰러지면서 아람 진을 향하여 한 발자국씩 황혼에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초라한 행진으로 굉장한 음향효과를 내신 것 같습니다. 문둥이들이 스러지고 넘어지고 하는 그 소리가 바람소리, 병거소리, 군대들의 말발굽 소리- 굉장한 군대들의 달려오는 소리로 아람군인들에게 들렸습니다. 아람 군인들은 이스라엘 민족이 다른 나라 군인들을 사서 공격해 오는 줄 알고 얼마나 급했던지 나귀 탈 시간도 없이 그냥 도망해 버렸습니다.”

이렇게 깨져할 이유는 우리가 근본적인 죄가 있기에 그리고 그것이 해결되지 아니했기에 깨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자들이 아직도 근본적인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아니했다는 주장입니다. 일반적으로 목사들이 회개하라고 했을 때 회개했다고 고백하지만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아니한 상태로 신자들이 남아 있다는 주장입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짓는 죄(간음, 살인, 도둑질 등)는 죄의 증상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죄의 결과와 죄의 근본은 다른 것이라는 견해를 갖고 주장합니다. 즉 근본적인 죄성에 해결되지 아니한 상태의 신자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무슨 죄를 지었다는 것이 아니고, 그는 근본적으로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라는 그 자체를 고백한 것입니다. 나는 죄 덩어리로 뭉쳐진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죄의 결과를 고백하는 것과 죄의 근본을 고백하는 것은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 현대교회의 무능함을 박옥수는 지적합니다. 즉 죄의 근본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죄에 대해서 약하기 때문에 죄를 사해 준다고 하면 귀가 솔깃해집니다. 이 시대의 많은 종교 지도자들이 죄를 씻는 문제로 교인들을 우롱하고 있습니다. 옛날 로마교회가 그러했습니다. 죄를 씻기 원하는 교인들의 간절한 마음을 이용해서, 면죄부를 사면 죄가 씻어진다고 성도들이 정확하게 죄를 사함 받는 방법을 모르고 덮어놓고 하나님을 믿으려고 열심만 내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죄 씻음의 확신이 있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교회를 얼마나 많이 다녔는지 모르지만 정확하게 죄 씻는 방법을 알고 계십니까? 어떻게 하면 여러분의 죄가 눈처럼 희게 씻어지는지 그 방법을 알고 계십니까? 그냥 ‘예수님을 믿으면 죄가 씻어지겠지’가 아닙니다. 확실하게 죄가 씻어져야 합니다. “기쁜 날, 기쁜 날, 주 나의 죄 다 씻은 날”

“이렇게 죄를 사함 받는 날이 여러분에게 꼭 필요합니다. 여러분, 그 날이 없으면 하나님과 여러분 사이에 늘 어두운 죄의 그림자가 막혀 있어서 성령의 능력이 여러분 속에 임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죄 사함의 고백을 요청하면서 확신을 가지기를 호소하고 있다.

“오늘 저녁, 여러분 가운데 신앙생활을 잘한다고 생각하는 분 말고 신앙에 자신이 없는 분, ‘나는 죄를 사함 받지 못했습니다.’ ‘나는 거듭나지 못했습니다.’ ‘나는 이제 정말 안 됩니다.’ ‘나는 멸망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는 사람에게 오늘 저녁 구원이 이루어질 줄 믿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박옥수는 죄 사함의 복음에 청중들을 호소력 있게 초대하고 있다.

“사랑하는 부산 시민 여러분, 만일 오늘 저녁 여러분이 하나님을 향하여 여러분의 생각을 버리고 발걸음을 내디디면, 오늘 저녁 하나님의 성령의 충만한 역사가 바로 여러분의 것으로 나타나게 될 줄로 저는 확신합니다. 여러분의 주장을 버리십시오. 여러분의 생각을 버리십시오. 누구든지 예수님 앞에서는 자기를 부인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하는 것도 버리십시오. ‘나는 목사네.’ ‘나는 세례 교인이네.’ ‘나는 모태 교인이네.’ 하지 말고 ‘나는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입니다. 나를 구원해 주옵소서.’ 하십시오. 여러분, 죄가 있으면서 죄인이 아닌 체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죄를 안 지었다고 해서 죄인이 아닌 엇은 아닙니다. 언젠가 기회만 있으면 죄가 드러날 것입니다. 아까 양덕만 전도사가 간증하기를 신학교 다닐 때는 착했던 것 같은데 군대에 가니까 죄가 드러나더라고 했습니다. 그렇지요. 형편이 되면 죄는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오늘 저녁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새로운 발걸음을 옮기게 되기를 바랍니다.”

박옥수는 “죄사함 거듭남의 비밀”이란 책에서 구원교리를 시종일관 다루고 있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시종일관 신자들은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으므로 구원의 확신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구원받는 확신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구원관은 구원파의 구원관과 동일하게 중생의 체험적인 고백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은 단순히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듭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중생했음을 정확하게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육적 생일을 기억하는 것처럼 영적생일도 기억하고 있어야 중생의 증거라는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회개를 통해 한 번 구원받고 거듭난 자는 자신을 더 이상 죄인이라고 고백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회개를 지속하는 것은 바로 구원받지 못한 증거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한 번 죄 사함을 받음은 지속적인 결과와 영향이 있기 때문이다.

박옥수의 신앙사상은 다른 저서에서도 동일한 맥락을 이루고 있다. 중생과 구원의 확신에 대한 도식은 그의 저서들에 동일한 주제로 다루고 있다. 그것은 현재의 기존신앙은 죄 사함을 받지 못한 것을 전제로 하고 죄 사함이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이므로 구원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죄 사함이 다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성도들의 죄를 지속적으로 강조한 것이다. 즉 구원의 확신이 없는 거짓된 믿음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설교는 항상 기존신자들이 죄 사함을 해결하지 못하고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명목상의 기독교인임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이들이 진정한 구원의 확신을 갖도록 먼저 그들의 죄 고백을 해야 함을 강조한다. 그리고 구원의 확신을 경험한 자들은 범죄의 족쇄에서 완전히 벗어나 항상 구원의 기쁨 속에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박옥수의 신앙과 신학적인 문제는 무엇인가? 박옥수는 성화의 과정을 곧 중생하지 못한 죄인으로 규정짓는데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신자들이 죄가 있다고 하면 그것은 바로 중생하지 못한 증거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의 신학사상에서는 개혁주의의 성화의 과정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몇 가지로 박옥수의 잘못을 정리할 수 있겠다.

1. 박옥수는 기성교회 신자들의 구원에 대한 믿음을 인정치 아니한다.
2. 박옥수는 죄와 죄의 증세를 구분하여 간음, 살인 등은 죄의 증상이며 죄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3. 박옥수는 구원을 받고 중생한 체험의 날짜를 알지 못하면 진정한 중생이 결여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4. 박옥수는 구원을 하나님의 은혜에 의존하기 보다는 인간의 확신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인식론적 체험주장- 깨달음을 통한 구원- 구원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이란 사상 결여).
5. 박옥수의 구원론에는 성화의 과정이 결여되어 있다.
6. 박옥수는 성화과정의 자범죄 등을 원죄와 혼돈하고 있다.
7. 박옥수는 구원후의 범죄를 인정치 아니하므로 율법폐기론의 위험성을 주장하고 있다(구원 후 회개의 무용론).
8. 박옥수는 기본적으로 구원파 계열의 구원론을 주장하고 있다.

Ⅲ. 결론

한국 기독교는 100년의 역사를 지나고 있다. 1907년 평양의 부흥운동은 한국교회 부흥의 새로운 전환을 만들었다. 한국교회는 처음부터 개인의 회심을 가장 중요시 하는 부흥운동과 복음전파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 역사가 1세기를 지나면서 한국 기독교는 서양 기독교와 마친 가지로 문화적인 종교로 전락하는 경향이 있다. 즉 개인구원의 확신이 점점 사라지고 명목상의 기독교인의 숫자가 증가해 가고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위험을 경험한 서양 기독교는 경건운동이나 복음주의 운동 등을 통해 이를 극복하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구원파가 기존 교인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성공적으로 파고드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구원파의 잘못된 구원사상을 배격하기 위해서는 기존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구원에 대해 구원파보다 더 확신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구원의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는 신앙적인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댓글

Scroll to Top